李光洙 칼럼(李光洙)

<육사는 내 인생의 토대>

 (이 글은 이광수 동기가 자기 약력과 지나온 생활을 간략히 육사일육사랑방 카페에 발표한 글을 전재한 것임)

저는 우리 동기생 중에 군 복무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 중 하나 입니다.  그 대신 다른 분야에서 동기생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왔다고 보겠습니다.  현재는 미 인디애나주립대학교 경영대학에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동기생들이 제 경력을 물어 보므로 우선 제 약력부터 말해보죠.

1964년에 군인으로 보다는 민간인으로서 더 많은 일을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5년차 예편원을 제출 했고 1965년 2월 말 겨우 육군 중위로 국방부에서 군 생활을 청산하고, 주 Malaysia한국대사관 Singapore연락관으로 한국무역진흥공사 Singapore무역관에 파견돼서 근무했습니다.

 2년 후 공부를 좀 해볼 생각으로 Hawaii로 옮겨 무역진흥공사 시장조사원 노릇을 하면서 University of Hawaii MBA과정에 들어 갔고 한국서 돈을 갔다 쓰기가 거의 불가능한 때였는데 다행히 한 학기를 끝내고 나니 조교자리를 받게 되어 공부를 계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경영학석사학위를 받게 되면서 정말 이제야말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사공부를 해볼 생각으로 원서를 내 보았더니 다행이 Cleveland에 있는 Case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조교자리를 주어 비싼 사립대학수업료도 걱정할 필요가 없이 공부를 하게 되었죠.

이 대학이 제 2차 대전시 영국군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Operations Research (OR)를 처음으로 민간기업과 정부기관에 적용하며 박사과정을 개설한 곳이라 흥미를 갖게 되었고 OR전공으로 석사학위를 하나 더 하게 됐습니다. 그 후 Western Reserve University 와 합병해서 개명된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에서 1975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교수 노릇은 1972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9년이 지났고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에는 The Standard Oil Ohio에서 선임연구원으로도 근무 했었습니다.

지금 누가 저를 보고 “만약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새 출발을 한다면 이제까지 해온 일 중 무슨 일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선뜻 육사생활과 박사공부라고 대답 하겠습니다. 저로서는 몹시 힘든 기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두 기간 동안이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에 가장 빛나고 보배스러운 때였다고 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육사 4년 동안의 공부와 훈련은 전인교육으로서 그 후 제 인생살이에 굳건한 토대를 이룩해 주었으며 이 튼튼한 반석 위에 나는 누구에게도 못지않은 군인이라고 자부하면서 임관을 했고 5년간의 군 생활 과 3년간의 해외주재원 생활을 육사명예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줌이 없이 끝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박사공부를 시작했을 때 65명의 학생이 함께 입교를 했는데 거의 반이 세계각국에서 모여온 유학생들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당면했던 문제는 학생 거의 모두가 나보다 열살 이상 아래며 나보다도 나이가 적은 교수들이 한 삼분지 일 이나 되었든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 군복무로 해서 한국 유학생들의 나이는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많은 편이었고 대부분이 고학생 생활을 했었습니다.

박사공부를 한다는데, 거의 매일, 정답도 없는 숙제를 새벽 2시, 3시까지 해야 했었습니다. 짧은 영어에 조교로서 일주일에 20시간 내지는 30시간 교수들을 도와 주어가며 공부하기가 너무도 힘이 들어, 내가 무슨 한국정부에서 보낸 국비장학생도 아닌데 왜 이 짓을 해야 하나 하고 이미 영주권도 있으니 주제넘은 공부 고만두고 처자식이나 먹여 살리지 하는 생각을 수 없이 하게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 마다 이를 이겨 내게 한 것은 분명히 육사생활을 통해 길러진 정신력이었다고 봅니다.

두 학기를 끝 맞추고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치게 됐습니다. 이 시험에 한번 낙방하면 한번 더 기회를 주는데, 30이 훨씬 넘은 사람이 계속 공부만해 온 20대 초반 학생들과 머리싸움을 한다는 것이 좀 힘든 일 같아서 첫 번 째 시험은 경험으로 간주 했었죠. 다행이 하늘이 도와 첫 번 시험에 셋째로 합격을 했습니다. 첫째가 남아공화국에서 온 Rhode Scholar 인 유태인이며 둘째는 이스라엘에서 온 유태인 이였습니다. 육십 여명 중 세 명이 합격했으니 제가 꼴찌로 턱걸이를 한 것이죠.

우리가 받은 육사교육이 한 전공분야를 깊이 파고 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입문 정도의 학습을 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우리 같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수학의 및 거름이 되었든 것입니다. 어느 과목을 택하건 생소하지 않았고 계속 그 분야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대학교가 미국국경일에는 놀지 안 해도 유태인 명절날에는 놀게 하는 유태인이 많은 학교라 그 후 한국유태인이란 별명을 듣게 되었죠.

박사논문의 연구는 경제활동과 환경오염 간의 관계를 찾아내고 환경을 파손시키지 않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해법을 얻는데 관한 것이었습니다. 70년대 초기 미국에는 Cleveland 시 가운데를 흐르는 강이 오염으로 해서 불이 붙은 적이 있었고 오대호 들이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환경오염을 이해하는데 는 유체역학과 기상학의 지식이 필요한데 이 문제 역시 3학년 때 공부한 유체역학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경제학과목도 들었죠. 철학과목은 우리의 생각을 좀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든 듯 합니다.

좀 번지수가 다른 얘기지만 미국에는 결혼 25주년이 되는 은혼주년이 아주 중요합니다. 벌써 12년 전인데 집사람에게 무엇을 은혼선물로 받고 싶으냐고 했더니 자기 맘에 맞는 집을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해달라고 하는 데로 따라갔더니 집이 좀 커졌지만 2학년 때 들은 지형도학 실력을 발휘하여 설계도를 만들고 건설업자와 의견이 달라졌을 때 집 모형을 만들어 놓았더니 그들이 기가 완전히 죽어 버려 시키는 데로 건축을 끝 맞추었습니다.

모두들 육사출신이 건축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 저택을 설계할 수 있었느냐고 하더군요. 저에게는 육사 4년 동안 받은 교육과 훈련이 모두가 소중하며 하나도 허비한 것으로 생각되거나 버릴 것이 없었습니다. 뜻이 있다면 우리가 육사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을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다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육사 사 년 과정은 어느 대학 교육보다도 월등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군 간부요원을 양성하기 위한 것뿐 만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간에 훌륭한 일을 해 낼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교육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방학 동안에도 집에 있을 땐 책을 드려 다 보며 대의명분이 서는 것이면 무엇이건 해 보겠다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육사정신에 의한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다른 기 육사 동창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화랑 동기생들 하나 하나가 모두 똑같은 보물을 받았습니다. 이를 닦고 빛을 내는 것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는 말하기를 난 이만하면 할일 다했다고 할지 모르죠. 허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내일 이 세상이 끝난다 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사람같이 이 노력은 계속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또한 육사정신이라고 봅니다. 사람마다 그 방법이 다를 테니 각자가 한번 자기 나름대로 이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경험담이라도 써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보통사람 들이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해 왔습니다. 후세들을 위해서도 이 경험담들은 적어 놓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후에 누구이건 그 글을 읽을 것이며 그에 대한 진가가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