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오미 오락여행(安東 五味 五樂旅行)-2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려 오늘 하루는 공치는 날인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비가 웬만큼 오면 마을 산책이라도 할까하고 대문을 열어보니 대문 앞에 식구수대로 큰 우산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호텔관리팀에서 우산을 준비하여 집집마다 가져다 놓은 배려에 감사는 마음이 인다. 이런 배려와 경험은 처음이다.

비가 와서 산책은 포기하고, 포트에 물을 끓여 국화차를 마셨다. 작은 팩에는 말린 꼬마국화꽃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찻잔에 넣고 물을 부으니 국화향이 그윽하다. 8시로 아침예약을 해서 식당에 가서 숙소 이름 팔회당정사를 대니 지정된 자리로 안내하고 몫몫으로 깔끔하게 차린 식사가 나왔다. 식판에는 쌀밥, 소고기무국에 배추김치, 쇠고기메추리알조림, 북어보푸라기, 배추나물, 부추전으로 5첩반상(飯牀)인데 양도 모두 먹을 만큼만 차렸고, 지금까지 접한 아침식사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정성이 배인 아침상이었다. 가족이 편하게 앉아서 담소하며 맛있게 식사했다. 식후에는 잣을 띄운 수정과가 나와 한식분위기를 더했다.

식후에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있어 식당 위에 있는 북카페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가져온 차림표를 보니 여러종류가 있는데 서울과 가격은 같았다. 나는 대추차, 아내는 생강차, 딸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친 다른 사람들도 많이 들어왔다. 잠시 후 차를 가져왔는데 우선 찻잔크기에 놀랐다. 찻잔은 밥공기만한 백자기 잔이었다. 대추차 잔에 가득한 차는 검붉고 걸쭉해 보여 티스푼으로 한 스푼 떠서 맛을 보니 진한 대추향에 대추과육이 쨈처럼 걸쭉하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 모두가 한 스푼씩 맛을 보았다. 그렇게 큰 잔에 그렇게 걸쭉한 대추차는 처음이다. 삼청동과 인사동찻집에서도 이렇게 주지 않는다. 이 대추차는 요즘말로 대박이었다. 생강차도 곱게 썬 생강알갱이가 찻잔바닥에 가득하다. 씹으니 아삭아삭하고 달지만 맵지는 않았다. 북카페에서 참고할 책이 있겠나싶어 찾았으나 수필 소설 전문서적이 많고 가볍게 읽을거리는 찾지 못해 안동소개서를 가져왔다. 차를 마시고 잠시 쉬다가 밖에 나왔으나 비가 조금씩 와서 우산을 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잔디는 재래종 금잔디로 잡풀이 없이 잘 관리되었고, 한옥주변의 철쭉 불두화(佛頭花) 접씨꽃 금낭화 함박꽃 이팝나무 장미 등이 어우러졌고, 곳곳에 쉴 수 있는 정자와 연못이 있어 정자에서 잠시 앉아 주변을 감상했다. 관리동은 초가집인데 볏짚으로 지붕을 이었고, 체크아웃을 하려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우리도 팔회당재사에서 짐을 정리하여 체크아웃하고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도산서원에 도착했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몸도 피곤하여 아내와 딸만 서원으로 가고 나는 차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본 것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앉아서 가져온 도산서원소개를 보고 서원 안내판을 사진으로 찍어 읽었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은 도산서당(陶山西堂)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陶山書院)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연산군 7)~1570(선조 3)조선 중기 주자성리학자]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1561년(명종 16)에 설립하여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하여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서원은 선조7년(1574년) 건립하여 퇴계이황(1501~1570)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하며, 후학을 양성해온 지방교육기관이다. 선조가 서원이름을 내리고 도산서원이란 편액(扁額)은 1575년에 조선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년~1605년,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가 써서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이 서원은 1969년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다. 서원과 관련자료 일화에서 퇴계의 인간상과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온 정성을 다해 국사에 전념하고 미련없이 떠나 후학을 가르친 거유의 정신이 현재 우리 지도층에 있다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우리 지도층 인사들이 얼빠진 비난이나 사욕 정당화를 접고, 하루쯤 서원을 방문해 그 정신을 배워갔으면 싶다.

서원방문을 마치니 비가 그쳤다. 다음은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 산북중학교 앞 허름한 뉴욕제과 앞에 멈췄다. 이 제과점의 찹쌀떡이 달인에 소개되고 매우 유명해져 전국에서 사려는 사람이 많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주1회만 전화예약을 받아 현 제과점에서 판매하고 택배는 불가라고 했다. 딸이 주문한 찹쌀떡이 나왔다. 맛이 궁금하여 펴놓고 먹어보니 과연 이렇게 부드럽고 쫄깃하며 그다지 달지 않은 맛은 처음이다. 달인이 되고 전국에서 몰려올 만하다고 생각했다. 주인에게 제과점에서 웬 찹살떡이냐고 하니 빵을 팔면서 찹쌀떡을 팔았는데 찹살떡 비중이 점점 커져 빵은 하지 못한단다. 여기에 쓰는 찹쌀과 팥은 모두 국산으로 했으나, 수요가 많고 일정한 질의 농산품을 구매할 수 없어 쌀은 지역민한테 구입하지만, 팥은 알 크기가 일정치 않아 삶는 시간이 달라 동일한 맛과 질을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 중국산 팥을 사용한다고 한다.

점심시간이라 고등어 산채정식집에 들렀다. 푸짐하게 차려 내왔으나 관광손님을 받는 식당이라 맛은 별로였다. 그래도 문경에서 고등어 산채정식을 들었다고 자위하며 문경의 특산 중에 사과를 빼놓을 수 없으니 시장과 직매점을 들러보고 농원직매점에서 문경사과 한 자루를 샀다. 단단하고 아삭하며 맛이 좋았다. 이렇게 여행에서 할 일이 모두 끝나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충주휴게소에 들렀는데 전 주차장이 천정가리개공사를 하여 차량이 뜨겁지 않게 했다, 전국휴게소에서 처음 보는 시설이었다. 직판장에 사과가 있어 먹어보니 질기고 문경 것만 못하다.

오는 길에 지난 이틀을 회상하니 사화와 척신들의 세도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나라가 유지된 것은 청렴결백과 헌신을 주요 덕목으로 하는 안동선비정신인 도덕관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번에 겪은 다섯 가지 맛은 ①찜닭 ②안동한우갈비 ③북카페 대추차 ④한식 아침밥상 ⑤찹쌀떡이 기억에 남는 맛이고, 다섯가지 즐거움은 ①만유정 가는길, ②월영교 산책 ③북카페 대화 ④한옥마을 돌아보기 ⑤뜨끈한 온돌방의 꿀잠이었다. 다섯 시가 지나 집에 도착하니 어둠속에서 내 신을 찾아 신은 것처럼 포근하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집이 최고라 하는가 보다. 끝.

   2019. 5. 21. 동암 이학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