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16기,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나?

                                                         석제(石濟)

2020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가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한지 60년이 되었다.
우리 동기 평균 나이도 84세가 되고, 1960년 3월 178명이 임관하였으나 그 동안에 63명을 먼저 보내고 얼마 있으면 우리도 그 본향인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먼저 간 동기들에게 감사의념을 드리면서 육사 16기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헤아려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일재 식민지 하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 해 무더운 여름날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일본은 항복을 하고 우리는 그렇게 그리던 해방을 맞았다.
그 후 중국이 모택동 공산당과 장개석 국민당의 이념대립으로 싸워 대륙이 적화되는 것을 보았고, 김일성이 소위 민족해방 전쟁으로 이 땅이 피로 물든 동족상잔 그 현장에 우리가 있었다. 임관 후 60년대 후반에는 역시 남북 베트남이 대립하여 이념전쟁을 버릴 때, 우리 자신이 직접 참전, 공산화를 막기 위하여 피를 흘렸다. 이를 통해서 민족주의의 허구성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거짓임을 절실하게 체험하였다. 그 후 5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가 당면한 국내 현실을 볼 때 우리는 평생 공산주의에 대항해서 싸우고 동족간의 이념전쟁을 치루는게 우리에게 주어진 천부의 과업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임관할 당시 전방상황을 알아보자.
그때 휴전선에는 철책선이 없었고, 지금과 같은 야시장비나 첨단 감시장비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유일한 경계수단은 휴전선 일대 나무를 찍어다가 목책을 세워 155마일 휴전선을 연결하였으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이를 뚫어 침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 병사들과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세워 몸으로 휴전선을 지켰다. 그래서 초급장교 시절에는 목책선에 묶여 젊음을 바쳐 외출도 휴가도 잊은체 병사들과 함께 지냈다.

먼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전투부대 해외파병인 맹호, 백마, 청용부대 파월 당시 한미관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 불란서와의 전쟁에서 전승을 거둔 북월맹 공산세력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1965년 2월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으나 영국을 포함한 NATO 제국은 이를 외면하였다. 미국 내에서도 반전 데모의 확산으로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존슨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2개 사단 중 1개를 베트남으로 전환할 것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국내에서는 6.25 전쟁의 폐허로 세계 최빈국이 되고, 정치적인 혼란은 나라의 앞날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1961년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국가 제건 최고회의 의장은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추진해 온 국가목표 ‘북진통일’을 ‘조국근대화’로 바꾸고 선 건설, 후 통일을 추진하였으나 국가재건을 위한 자금조달의 한계에 봉착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일 국교정상화에 의한 청구권과 월남파병으로 미국의 원조를 얻어내는 방책을 모색하였다.

64년 5월 박대통령은 존슨 대통령이 보낸 전용기로 방미,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혁명공약에서 반공(反共)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은 박대통령과 투철한 반공주의자인 존슨의 만남은 반공이라는 공통분모로 쉽게 접근할 수가 있었고, 군사혁명으로 소원해졌던 양국관계가 동맹관계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은 65년 초 전투부대 파월을 요청하였고, 국내에서는 대리전쟁이라는 강력한 반발이 있었으나 65년 10월 맹호, 청용부대, 66년 10월 백마부대가 월남에 참전하게 된다. 이와 병행하여 미국은 한미 간의 우의증진과 주한미군의 계속 잔류, 그리고 1억 5천만 불의 차관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 자금으로 우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차질 없이 계속 추진하여 70년대에 들어서는 중화학공업으로 전환, 연 평균 10%의 고도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오늘의 GNP 3만불을 넘는 경제적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한편 우리 육사 16기 동기생의 특성을 알아보자.
6.25 전쟁이 끝나고 폐허된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일자리가 없었다. 그 결과 전국의 수재들이 육사로 모여들었고, 입시경쟁률도 역대 최고인 27:1을 기록하여 16기가 개교 이래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인정을 받았다. 특히, 당시 서울고등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 김원규 교장의 권유로 서울고 출신 25명이 16기에 포함됨으로 해서 역대 어느 기보다 서울사람이 가장 많은 기가 되었고, 도시 사람의 성품을 따라 독불장군이 없고, 대인관계를 중요시 하는 기가 되었다. 16기 중에 파월한 인원은 116명이다. 그 중에 보병병과는 66명이었고, 이 중 대부분은 맹호, 백마사단 중대장직을 맡았다. 따라서 파월초기 맹호, 백마부대 중대장은 우수집단 16기가 도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남전의 작전 지휘체계를 보면 주월 미군사령관이 TAOR을 설정하고 작전개념을 하달하면 각 사단에서는 작전계획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연대 혹은 대대 작전을 수행하지만 게릴라전이라는 특성과 정글이라는 지형의 여건을 고려할 때 작전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전투중대였고 그 중심은 중대장이었다. 따라서 대부분 16기로 중대장을 충원받은 맹호, 백마사단은 그 전투력이나 용맹성으로 비교할 대상이 없었고, 그 소식은 본국에는 물론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다.

파월 당시 아들을 파송하러 부산항에 내려오신 어머니께서 파월하는 아들에게 며느리가 보는 앞에서 “살아서 돌아올 생각을 말라.”는 그 음성은 오늘까지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살아있고, 전투 중에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한 중대장에게 박대통령이 친서로 격려한 사실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졌을 때 이 소식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면서 우리에겐 애국심의 그루터기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육사 16기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전쟁으로 점철된 일생이었고 평생 공산주의와 싸웠고,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에 참가하여 민족주의가 허구임을 피를 흘리면서 배웠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가장 우수한 집단이며 우리가 주축을 이룬 맹호, 백마부대가 월남에 참전함으로써 한미관계가 원활해졌고, 이에 따른 미국의 원조는 오늘 우리의 번영을 이끌었다.

BC 470년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쳐, 자신과 자신의 존재 의미를 먼저 알라고 철학의 주제를 세웠다. 우리도 우리가 속한 육사 16기의 정체성을 알고 국가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면 눈을 감을 때 미소를 지을 수 있고, 또 자손들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를 두었다는 자부심을 심고 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