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동기회  약사(略史)

216명의 젊은이들이 배움의 전당 화랑대의 문을 두드려
희노애락을 싣고 각축하기 4년, 36명이 대열에서 이탈함에 따라
180명이 졸업과 동시에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전쟁 후인지라
경제적으로는 곤궁스러웠으나 국내 정치는 이렇다 할 기복이 없던 입교
당시와는 대조적으로, 임관을 앞둔 1960년 봄,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가원수가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치 못하는
건군사상 전무후무한 정황 속에서 우리들 화랑동기는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한달이 채 못된 가운데 발생한 저- 역사적 4.19민주화의거 그리고
곧이어 밀어 닥친 5.16 군사혁명의 소용돌이가 우리 사회를 휘몰아칠 때
우리들이 있어야 할 곳은 휴전선 철책이 줄지어 간 DMZ 내 방카였으니,
우리는 그 곳에서 조국의 미래를 근심하며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북쪽하늘을 응시하곤 했다.

전투부대의 최하급 지휘관이지만 가장 중요한 전투단위인 중대장급
지휘관으로 월남전선에 대거 참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직업군인인 우리들에게
큰 행운이었다. 동기생인 고 강재구 소령의 비보를 초극(超克)하고 피와 땀을
흘리며 체득한 지휘경험은 조국의 안위를 위해 그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월남 전선에서의 경험은 전투뿐 아니라 성공적 부대운영에 없어서는 안될 보화와
같은 것이었으니, 우리 화랑동기생 대부분이 부대운영에서 많은 업적을 거두고
고급 지휘관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그 덕분이 었으리라.
 
혁혁한 공이 어찌 전쟁마당에서 뿐이겠는가. '70년대로부터 이어진 국토개발과  경제
건설에, 군 요원으로 혹은 관리로 또는 교단과 연구원의 일원으로서 기여한 공로 또한
우리의 근대화 역사의 도정 속에 역연히 아롱져 있을 것임을 자부한다.

이 모든 업적의 근본적 공로자는 풍진노도 헤처나갈 배움의 전당 「화랑대」임은 여기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화랑대」에서의 배움의 기간동안 우리들을 이끌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따라 주었던 그 옛날의 부하들, 유명을 달리한 21명의 동기생  
그리고 모든 호국영령들 앞에 삼가 머리 숙여 감사와 위로의 예를 올리는 바이다.

이제 여생의 미래에는 삼세(三世) 들의 재롱을 즐기되, 사이버 세계에도 탐닉하고,  
신앙을 통한 영혼의 진화를 이루어 존경받는 황혼에 다가  설  것이다

                                 2001년  3월  23일